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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기념일 제정에 관하여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진 윤 식
고창뉴스 2011. 02.23(수) 09:27확대축소


우리나라 근․현대사중에 나라운명이 전환하는 큰 계기가 됐던 1894년 동학 농민혁명이 그동안 기득권 세력에 의해 역적의 무리로 파묻혀 있다가 1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다행히 그 씨앗에 새 생명이 있어 한그루 나무로 성장하는 계기가 있었으니 그때가 2004년 새봄 동학농민혁명참여자등의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되었고, 이어서 여러 사업 중 하나가 바로 기념일 제정에 관한 문제였다. 그리하여 2004년 6월5일 전주 역사박물관에서 전국의 기념사업 단체 대표들이 모여 지역과 무관한 학자들의 학문적 토론을 거처 기념일을 제정키로 의견을 모은바 있으며, 이에 전문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2004년 9월 11일 연세대학교 박물관 강당에서 제1차 토론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동학농민혁명사의 마디마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날을 간추려 보니 ①고부농민 항쟁일 ②1차 무장기포일 ③백산봉기일 ④황토현 승전일 ⑤황룡천 승전일 ⑥전주 입성일 ⑦집강소 설치일 ⑧2차 삼례봉기일 ⑨남․북접 기포령 발표일 ⑩우금티 전투일등이 선정 되었으며 아울러 국․내외 사건과 그 기념일 제정 배경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검토 하였다,
이어 제2차 토론회(10월7일 충북대 박물관)에서는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으로 ②무장기포일 ③백산 봉기일, 그리고 ⑩우금티 전투일등 3곳으로 압축이 되었으나, 백산봉기는 오지영의 동학사에만 의존하는데 여기에는 긍정적 측면과 더불어 날짜와 장소, 시기 등에 대한 오류가 발견되므로 하여 탈락이 되고 이제 남은 곳은 ②무장기포일과 ⑩공주 우금티 전투일로 좁혀졌다. 여기에는 직접 참여한 학자는 물론 인터넷 등을 통한 참여까지 더해져서 그야말로 학자들의 대회전이라 할 만큼 치열한 논쟁을 거쳐 무장기포일로 굳혀져 갔다. 이는 순수 학문적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대 토론이었으며 참여한 학자들이 무려 30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 일을 특정지역에서 정치적․사회적으로 끌고 가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하였다. 또한 학술발표장에는 한번도 와보지 않은 제3자들이 본질도 아닌 현상만을 가지고 왈가왈부 하면서 마치 지자체들이 쟁탈전을 벌이는 양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는 듯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무장기포는 실체가 없는 단순 집결지에 불과하다고 축소․왜곡 시키는 학자도 있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무장기포의 실체는「동학농민혁명사료총서」에 수도 없이 나온다. 대표적인 몇 군데만 기록해 보도록 하겠다.
총서1권 「黃玹의 오하기문」에 보면 「右沿一帶十余邑 一時蜂起 旬日間至數萬人 東學之與亂民合自此始 琫準等大會茂長縣布告民間 其文曰.」 즉, 우도일대 10여 읍이 일시에 봉기하여 열흘정도에 수만 명이 모여들었고 동학이 난민과 함께 어우러진 것이 이때부터였다. 봉준 등은 무장(茂長)에서 큰 집회를 열고 그들의 생각을 민간에 널리 알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라고 하면서 「무장포고문」(茂長布告文)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총서 제5권에 보면 먼저 「무장현동학도 포고문」을 시작으로 무장에서 출발한 농민군이 흥덕의 사․후포에서 1박하고 다음날 줄포를 거처 고부관아를 점령하는 과정, 무주관아에서 서울의 공문, 전라 감영의 통지문, 각 관아에서 보낸 통고, 그리고 각지의 현감들이 수시로 보낸 장계 등이 있는바,
이 자료는 무주부사가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 등서(謄書) 해 놓은 이름하여 수록(隨錄)이다. 이 문건 역시「필자불명의 자료」라고 폄하하면서 무장 기포설을 극구 부인하고 있는데 전체 동학사의 연결 고리로서 소중한 문건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은 일본교도대학 가와이문고에 납치되어 있으며 어느 학자가 어렵사리 복사해 와 무장 기포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봉준장군 수행원을 했던 김흥섭옹의 증언은 좀더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갑오년 3월초 전봉준 장군이 고부봉기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자 하였으나 신임군수 박원명이 기포 인민들과 만나 잘못된 것은 시정키로 하고 성의를 다하여 설득한 나머지 군중들은 마침내 해산하기에 이르렀고, 몇일 뒤 안핵사 이용태가 역졸 800명을 거느리고 들어와 동학군들을 잡는다며 고부군내에 분탕질을 치고 다니니 전봉준은 측근 수십명과

함께 무장의 손화중에게 들어오게 된다. 그에 앞서 「1893년 12월10일 무장기포지 구수마을의 송문수씨 댁에서 손화중, 김성칠, 정백현등과 만나 전라감사 김문현의 폭정에 거의(擧義)할 것을 모의하고, 이어 갑오년(1894) 2월19일엔 다시 공음면 신촌리 김옹의 집에서 앞서 말한 손화중, 정백현, 송문수, 김성칠외 김개남, 서인주, 임천서, 김덕명, 강경중, 김영달, 고영숙, 최재형등 각 읍의 접주들이 모여 행동준비를 구체화 했는데」, (그간 시기상조를 말하며 거병을 미뤄오던 손화중 접주가 비로소 승낙을 한 것으로 봄) 「전봉준장군을 도솔대장으로 한 동학군은 대장기엔 5색단으로 오만년수운(五萬年受運)이라 새겼고 각 포(包)군기는 다섯가지 색으로 나뉘어 나타냈으며, 군졸들은 궁을장(弓乙章)을 붙이고, 월여에 걸쳐 준비, 3월15일엔 부대를 편성, 5일 동안 훈련을 마친 다음, 20일부터 각지에 격문을 보내는 등 행동을 개시하자 그동안 피신중이던 수많은 교도들이 때지어 모여들었다.」 (김흥섭의 증언 1965년 11월5일 중앙일보)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대한계년사 등 단편적으로 나오는 자료는 많은데 생략하기로 하고, 동학농민혁명이 일정부분 성공하기 까지는 한 고을의 경계를 넘어 전국단위의 항쟁으로 승화시킨 무장기포로부터 시작이 되고 무장기포의 핵심은 바로 손화중포의 세력인 것이다. 그는 20대 젊은 나이에 처남 유용수와 함께 이른바 10승지를 찾아 지리산 청학동에 들어가게 되고, 마침 영남지방을 휩쓸던 동학에 입문하게 되며, 2년만에 고향에 돌아와 정읍 부안등에서 포교를 하다가 본거지를 무장의 사천․양실(현 고창군 성송면 괴치리)로 옮겨 그곳 주민과 보부상을 중심으로 포교활동을 하던 중, 선운사 도솔암 미륵비기 탈취사건으로 하여금 교세가 크게 확장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북접에 최시형이 있다면 남접에 손화중이라 할 만큼 세력이 커지게 되었고, 전봉준이 고부에서의 패배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손화중과의 힘이 합해졌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단순 날짜로만 봐서는 3월8일 금산 제월 에서는 4000명의 농민군이 기포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장기포와는 성격이 다르기에 추천을 받지 못했음도 부기해 둔다.



2010년 9월 4일 기념일 제정 문제가 6년을 기다려도 결론이 나지 않자, 「동학농민혁명유족회로서는 부득이 기념일 제정을 위한 1, 2, 3차 토론회에서 드러난 다수 의견을 존중하여 무장기포일인 4월 25일(음 3월 20일)을 동학농민혁명기념일로 받아들이는 게 합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필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과정을 극히 한정된 부분만을 기록한 것이다.



고창뉴스 gcnews@gc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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